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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역사/유적/국내 관련

[우리나라 역사] 발해 왕실 연대표

발해(渤海, 699~926 , 227년간, 총15대)

왕명

재위기간

약사

1

고왕
(高王, ?~719)

699-719

휘는 대조영(大祖榮). 고구려의 유민으로 고구려 유민과 말갈 족을 규합하여 동모산(東牟山, 길림성 동화)에 나라를 세우고 국호를 진(震)이라함. 연호를 천통(天統)으로 함. 713년 고구려 영토를 거의 회복하고 국호를 발해로 고침.

2

무왕
(武王, ?~739)

719~737

휘는 대무예(大武藝). 대조영의 아들. 연호를 인안이라 했다. 무력?양성, 흑수말갈, 당나라 등주를 공격했다.

3

문왕
(文王, ?~793)

737~793

휘는 대흠무(大欽茂). 무왕의 아들. 내치에 치중하여 관직제도 제정, 사적(史籍) 수입, 주자감 설립 등 정치, 문화발전에 힘썼다.

4

폐왕
(廢王, ?~794)

793~794

휘는 대원의(大元義). 문왕이 사망하고 그 아들인 대굉림(大宏臨)도 일찍 사망하였다. 굉림의 아들인 대화여의 나이가 어려 세력이 강했던 그가 왕위에 올랐지만, 정통성 문제로 1년도 못되어 살해되었다.

5

성왕
(成王, ?~795)

794~795

휘는 대화여(大華與). 대굉림(大宏臨)의 아들. 폐왕이 포악하였으므로 백성들이 그를 폐하고, 성왕을 옹립하였다. 연호를 중흥(中興)으로 고치고, 수도를 이전 도읍지였던 상경(上京)으로 다시 천도하였다.

6

강왕
(康王, ?~809)

795~809

휘는 대숭린(大崇隣). 성왕(成王)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당·일본 등과 문물교류를 활발히 진행하였으며, 결과 외교사절의 왕래가 빈번하였다. 연호를 정력(正曆).

7

정왕
(定王, ?~812)

809~812

휘는 대원유(大元瑜). 강왕의 아들이다. 재위기간이 4년에 지나지 않았으며, 치적으로서 특기할만한 것이 전하지 않는다. 연호를 영덕(永德).

8

희왕
(僖王, ?~817)

812~817

휘는 대언의(大言義). 정왕이 죽자 왕위에 올랐다.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왕으로 책봉받았다. 814년 당나라와 교류하여 문물·제도를 받아들였으며, 당나라에 불상을 보내기도 하였다. 연호를 주작(朱雀).

9

간왕
(簡王, ?~818)

817~818

휘는 대명충(大明忠). 즉위한 다음해에 죽었기 때문에 정치·행정·외교면의 행적은 별로 없다. 연호는 태시(太始).

10

선왕
(宣王, ?~?)

818~830

휘는 대인수(大仁秀). 대조영의 아우인 대야발(大野渤)의 4세손이다. 고구려와 부여 등의 옛 영토까지 강토로 삼아 발해 중흥의 대업을 이룬 중흥군주(中興君主)로서 이때 발해는 해동성국(海東盛國)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행정구역을 5경(京) 15부(府) 62주(州)로 개편하였고, 학술을 진흥시키는 등 발해의 전성기를 이루었으며 일본과의 사신교환도 매우 활발하였다고 한다. 연호는 건흥(建興)

11

대이진
(大彛震, ?~?)

830~858

선왕(宣王) 대인수(大仁秀)의 손자로 왕권을 물려받았다. 아버지인 신덕이 사망함으로 인하여, 동궁(東宮)으로 책봉되기 전에 '권지국무'라는 칭호로 즉위했다. 그는 당나라 문화를 받아들이고, 10여 차례 조공(朝貢)하는 등 경제와 문화의 교류에 힘썼다. 연호를 함화(咸和).

12

대건황
(大虔晃, ?~?)

858~871

대이진(大彛震)의 동생이다. 연호와 시호는 전하지 않으며, 당시의 내치에 관한 기록도 남아 있지 않고, 단지 당나라와 일본과의 외치에 관한 기록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13

  경왕
  (景王, ?~893)

871~894

휘는 대현석(大玄錫), 대건황의 아들. 당(唐)나라 의종 때 세 차례 스스로 당나라에 들어가 국교를 강화하고, 일본에도 사신을 보내어 교역을 넓혔다.

14

대위해
(大瑋瑎, ?~?)

894~906

연호와 시호, 가계 등은 전하지 않고 있다. 당시의 내치에 관한 기록도 남아 있지 않으며, 다만 당나라와 일본과의 외치에 관한 기록만이 있다.

15

애왕
(哀王, ?~?)

906~926

휘는 대인선(大諲譔). 재위 시절의 발해는 거란(요)의 야율아보기(耶律阿保機)의 팽창주의에 두려움을 느끼고 신라 등 여러 나라와 연합하여 이를 견제하려 하였다. 925년 야율아보기가 친정(親征)을 감행하였다. 926년 103개의 성이 모두 거란에 점령되어 발해는 멸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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