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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역사/유적/국내 관련

[스크랩] 자식 농사 甲 (홍진기) 홍진기 1. 일제 식민지하에서 판사로 재직 하면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반하는 뼛속까지 친일파 2. 친일파 홍진기에게 큰 위기가 찾아오는데 바로 일본이 원자폭탄 맞고 gg치면서 광복 3. 시민들에게 돌맞아 죽을까봐 잽싸게 친일에서 친미로 변신하여 미군정청 법제관으로 변하고 이승만 정권에 아부하여 붙음 4. 1954년 법무부 차관을 거쳐 이듬해 법무부 장관에 취임하여 국가보안법 파동에 바판적이던 경향신문을 강제 폐간 5. 3.15 부정선거를 수습해준 공로를 인정받아 이승만의 신임을 얻어 내무부장관에 임명 6. 이승만 정권에 반발하거나 부정선거에 불만을 품은 시민들을 빨갱이로 몰아 있지도 않은 죄를 물음. 이기붕 광영주와 함께 이승만 사랑 독차지 7. 4.19 혁명때 내무부장관으로 시민들에게 무차별 발포를 지.. 더보기
★ 훈요 십조 (10조) 二十六年夏四月御內殿召大匡朴述希親授訓要曰: 26년 여름 4월 내전에 드시어 대광(大匡) 박술희를 불러 친히 훈요를 주며 말씀하시기를, “朕聞大舜耕歷山終受堯禪高帝起沛澤遂興漢業. 짐이 듣건대, 대순은 역산에서 밭을 갈다가 마침내 요(堯)의 선위를 받았고, 한나라 고제는 패택에서 일어나 드디어 한나라 제업을 일으켰다. 朕亦起自單平謬膺推戴. 夏不畏熱冬不避寒焦身勞思十有九載統一三韓?居大寶二十五年身已老矣. 나 또한 가난하고 평범한 집안에서 일어나 사람들에게 잘못 추대되어 여름에는 더위를 두려워하지 않고 겨울에는 추위를 피하지 않으면서 몸과 마음을 괴롭힌 지 19년 만에 삼한을 통일하였고, 외람되이 왕위에 있은 지 25년이니 이 몸은 이제 늙었다. 第恐後嗣縱情肆欲敗亂綱紀大可憂也. 爰述訓要以傳諸後庶幾朝披夕覽永爲龜鑑. 다만.. 더보기
[서울] 이태원 명칭의 유래 李泰院', '利泰院'이라고도 쓴다. 대개 역원(驛院)을 두면 그 주위에 마을이 형성되고 마을의 이름도 원의 이름을 따라 부르는 일이 관례처럼 되어 왔다. 서울 남산의 남쪽, 지금의 용산구 이태원동의 동북쪽에 역원 이태원을 두었는데 그 주변에 마을이 생기자 이 마을의 이름도 이태원이라 부르게 되었다. 1907년(융희 1) 이곳의 개발을 위하여 주민들을 당시 경기도 고양군 구역 내로 이주시키고 그 마을 이름도 이태원이라 하였다. 처음의 이태원은 일본인 전용 거주지로 조성, 이름을 수도정(水道町) 2정목(二丁目)이라 하였으나 주민들은 '이태원'이라 불렀다. 1922년 4월 경성부(京城府)의 확장에 따라 이태원리는 경성부에 편입되고 그때까지 경성부와 고양군의 경계를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나뉘었던 2개의 이태원은.. 더보기
역대 황제들의 위엄.JPEG p.s 고종빼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이런 그릇이 임금이 됐으니 나라가 망하지..ㅉㅉㅉ 더보기
6조 (이조, 호조, 예조, 병조, 형조 ,공조) 이 조 : 관직에 등용된 사람들에게 그 직을 정하여 주고, 나라에 공이 있는 사람들 치하하여 공신으로 봉작하고 여러관직의 관원들에 성적을 평점하는 등의 일을 하던 곳으로써 으뜸벼슬은 정2품의 이조판서로써 오늘날의 행정안전부에 해당됩니다. 호 조 : 나라의 인구와 가구수 그리고 토지를 파악하여 해마다 곡식의 생산을 산출하여 그에 맞는 조세를 부과하는 일 등을 맞아 보던 관청입니다. 으뜸벼슬은 정2품의 호조판서 로서 오늘날의 지식경제부에 해당됩니다. (육조의 으뜸벼슬은 모두 정2품의 판서임) 예 조 : 예법과 예술, 종묘제례, 사신대접, 관원이 임금에게 문안이나 정사를 아뢰는 일 등의 국가교류에 대한 일을 맡아보던 관청으로 그 으뜸벼슬은 정2품의 예조판서로써 오늘 날의 교육과학기술부에 해당됩니다. 병 조 :.. 더보기
▶[조선시대의 품계표]와 [대한민국의 직급표]와의 비교표 ▶[조선시대의 품계표]와 [대한민국의 직급표]와의 비교표 ※내명부와 외명부, 종친부와 의빈부, 잡직과 토관직은 편의상 제외하고 조선시대의 동반과 서반인 문관과 무관, 문무관의 부인, 그리고 대한민국에서의 입법.행정.사법.교육.국방.치안에 한해서만 그 품계와 관직, 직급을 정리하여 올립니다. [조선시대의 품계표] [문무관의 부인] [대한민국의 직급표] [정부투자기관의 직급표] 조선시대 대한민국시대 품 품계 관직 외명부 (문무관처) 직급 행정.입법 사법 교육 국방 치안 정부투자기관 동반 (문관) 서반 (무관) 대통령, 국회의장 대법원장 정1품 대광보국숭록대부 보국숭록대부 영의정.좌의정.우의정 府夫人 貞敬夫人 국무총리 종1품 숭록대부 숭정대부 좌찬성.우찬성.중추부판사.의금부판사 奉保夫人 貞敬夫人 부총리 정2품.. 더보기
유한킴벌리 유일한 박사님 유서 유한킴벌리 유일한 박사님 유서 첫째 유일선의딸 즉 손녀인 유일링(당시 7세)에게는 대학 졸업시 까지 학자금 1만 달러를 준다. 둘째 딸 유재라에게는 유한 공고 안에 있는 묘소와 주변 땅 5천평을 물려 준다. 그땅을 유한 동산으로 꾸미고 결코 울타리를 치지 말고 유한중,공업고교 학생들의 마음대로 드나들게 하여 그 어린 학생들이 티없이 맑은 정신에 깃든 젊은 의지를 지하에서나마 더불어 느끼게 해 달라. 셋째 유일한 자신의 소유 주식 14만 941주는 전부 ‘한국사회 및 교육원조 신탁기금‘ 에 기증한다. 넷째 아내 초미리는 재라가 그 노후를 잘 돌보아주기 바란다. 다섯째 아들 유일선에게는 대학까지 졸업시켰으니 앞으로는 자립해서 살아가거라. 더보기
[투자]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 IMF 구제금융사태라는 초유의 국가위기상황은 역설적으로 수많은 '스타'를 배출했다. 주식시장을 포함한 금융계 인사들도 적지 않았다. 그 중 각종 '게이트'나 주가조작 시비에 휘말리지 않고 이전의 명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이는 김정태 국민은행장과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44) 정도일 것이다. 김행장이 현재 한국 금융계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영인이라면, 박회장은 미래 자본시장에 어떤 식으로든 큰 변화를 올 인물로 주목받고 있다. 1997년, 11년간의 증권사 샐러리맨 생활을 청산하고 경영자의 길로 들어선 박회장은 5년 남짓한 기간 동안 두세 걸음 앞선 미래 분석과 과감한 추진력으로 놀라운 성공 신화를 창조했다. 코스닥 열풍이 몰아치기 2년여 전, 일찌감치 벤처기업에 눈을 돌려 막대한 수익을 거뒀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