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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금융/재테크/경제일반

명동 사채시장의 큰손들

명동사채시장(明洞私債市場)

국내의 사채시장은 주로 명동일대와 신사동을 중심으로 강남지역, 종로 ·광화문 일대 등 세 곳에서 주도해왔다.

그러나 신용카드·채권·부동산 담보를 통한 대출이 주종인 다른 곳과는 달리 명동은 어음할인 중개 상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실명제 실시로 가장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

8·15해방과 더불어 사채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한 명동일대는 5·16을 거치면서 경제개발에 편승하여 1970년대 초에는 ‘제3금융권’으로 위세를 떨치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80년대 후반 이후 부동산열풍과 증시활황으로 ‘큰 손’들이 빠져나가면서 침체하였고, 90년대 들아와 금융실명제가 실시되면서 사실상 그 시대를 마감하게 된 것이다.

출처 : http://cafe.naver.com/economyexam/8616



박현주 미래에셋증권 회장은 "대학원시절에 백여사로부터 주식투자를 배웠다"고 한다

 

그러면 명동사채업자들의 현금동원력은 얼마정도나 될까?

 

 

1.(개성상인출신) 1995년 작고한 「백할머니」는 사채시장과 주식시장에서 「대모」로 불렸다. 6·25 직후 군복 등 의류사업을 해서 돈을 벌어 1960년대 주식시장에 뛰어들었다.

우량주를 사서 묻어둔 뒤 株價가 오르면 파는 정석 투자방식으로 큰돈을 벌었다. 백 여사 특유의 배짱이 한몫했다.

 

 

2.(개성상인출신) 「광화문 곰」 고씨는 부동산으로 1970년대에 7000억원대의 큰돈을 벌었지만 주식으로 전재산을 날렸다.

 

 

3. 장영자씨는 1982년 「6400억원대 어음사기 사건」의 주인공이다. 당시 장씨는 38세였다.

첫 번째 구속될 때 검찰의 수사결과 장씨 명의로 된 재산은 거의 없었다.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서 장씨를 거액 자산가로 보기는 어렵다. 장씨가 어떻게 최고급 빌라에 살면서 순식간에 수백원대 자금을 동원할 수 있었는지는 불가사의로 남아 있다.

 

 

4. (개성상인출신)「현금왕」 단사천 前 해성그룹 회장

2001년 작고한 「현금왕」 단 회장은 1980년대에 하루 현금동원력이 3000억원 규모에 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재벌들 중에 단 회장 돈을 안 빌려쓴 곳이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고 鄭周永 前 현대그룹 회장도 가끔 단 회장의 도움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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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손]들의 규모가 어느정도인지 파악되었으리라...

 

실제로 이들은 매주 토요일 점심때마다 명동에서 회식을 하며...

자기네끼리만 돌잔치를 하고,

대우증권계좌를 통해(대우증권 명동지점이 사채업자들의 창구임) 주식투자를 하고...

 

250억원대의 회사를...1달내내 상한가를 치게 만들 수 있는 현금동원력이 있다.

 

 

이들이 갖는 본질적 힘은... 유통가능한 현금... 초단기로 집중해서 운용할 수 있는 현금에 있다.

[돋보기]로 모아서 내리쬐는 햇빛을 상상해보자. 물론 좋은 재료(검고 잘 탈 수 있는 재질)가 선결조건이겠지.ㅋㅋ

 

 

만일... 회사주식을 담보로, 현금을 빌려주었는데, 돈을 갚지않으면... 무차별로 주식을 매도해서 현금화해버리고만다.

그들의 유일한 재주이자 수단이자, 목적은... 현금을 굴리는데 있기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종목선정할때, 대우증권계좌의 유무와 규모를 유심히 살펴본다)

 

부자들의 삶을 되짚어보면.. [선택]과 [집중]에 있었음을 되새기며 이만 마무리할까 한다...

출처 : http://cafe.naver.com/3stockstudy/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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