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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월드컵의 주최국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어떤나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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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프리카 공화국*

면적은 121만 9090㎢, 인구는 4517만 2000명(2002)이다. 인구밀도는 37.1명/㎢(2002)이다. 공식명칭은 남아프리카공화국(Republic of South Africa)이다. 수도는 프리토리아이고, 공용어는 영어와 아프리칸스어를 사용하고 있다. 주변에는 모잠비크, 스와질란드, 짐바브웨, 보츠와나, 나미비아와 인접해 있으며, 영토 내에 독립국 레소토가 있다.

 

 

< 역사 >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원주민은 호텐토트나 부시먼이지만, 그 역사는 분명하지 않다. 1488년 포르투갈인이 지금의 케이프타운 부근에 내항하고, 1497년 지금의 나탈주 해안까지 도달했으나, 그들은 이 지역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으며 내륙에 발을 들여놓지도 않았다. 그리고 당시는 북쪽으로부터 반투계 부족들이 가축과 함께 차츰 남쪽으로 영토를 확대하는 중이었다. 1652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J.리이베에크가 동양무역의 보급기지 건설을 위해 케이프타운에 상륙한 후부터 네덜란드인의 이주가 계속되었고, 프랑스와 독일의 신교도도 망명해왔다. 이들은 농업과 목축을 하면서 스스로를 보어(네덜란드어로 농부)라 불렀다. 그러나 그들은 원주민의 토지를 약탈하고 칼뱅주의에 의한 노예 소유주의자 사회를 만들려고 했기 때문에 원주민과의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 100년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18세기 후반 국제적인 해운통상국으로서 네덜란드를 물리친 영국은 인도무역의 중계지로서의 케이프타운을 나폴레옹의 네덜란드 점령기에 점령하였다가 1815년 정식으로 영국의 케이프 식민지로 만들었으며, 1843년 나탈도 점령하였다. 영국의 노예해방과 자유주의 정책을 반대한 보어인은 1830년대부터 내륙으로 이동하였으며, 당시 북으로부터 남하해 오던 반투계 부족들과 싸우면서 트란스발공화국(1852)과 오렌지자유국을 건국하였다(1854).

19세기 중엽에 영국은 산업자본의 발달에 따라 광대한 시장을 필요로 하는 제국주의시대에 돌입했으며, 1867년 오렌지자유국의 킴벌리에서 다이아몬드 부광(富鑛)이 발견되자 그 지방의 할양을 요구하여 1871년 영국령으로 만들었다. 이어서 1886년 트란스발의 위트워터스랜드에서 금광이 발견되자 케이프 식민지의 총리 C.J.로즈가 이를 차지하기 위해 제임슨 침입사건을 일으켰으나 실패하여 실각하였다. 그후 1899년 보어전쟁이 일어났다가, 보어측의 패배로 1902년 화약이 성립, 두 공화국이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으며, 1910년에는 이들 4개 지역이 합병하여 영국연방의 일원으로 남아프리카연방이 형성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때에는 영국 쪽으로 참전하여 독일령 서아프리카(현재의 나미비아)를 점령하고 위임통치령으로 만들었다. 1924년 국민당과 노동당의 연립내각이 성립되었으며, 일련의 인종차별법이 제정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에는 연합군으로 전승국이 되었으며, 1948년에는 보어계의 내각이 구성되어 인종차별이 더욱 강화되었다. 1950년 인종등록법을 제정하여 주민을 인종별로 분류해 등록하게 함으로써 ‘아파르트헤이트’라는 인종차별정책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또 1959년 반투 자치촉진법으로 흑인들의 남아프리카공화국 국적을 박탈했다. 또 통행법을 만들어 흑인들을 감시했으며, 이 통행법에 반대해 일어난 시위대를 무차별 진압한 1960년의 샤프빌 학살로 약 2만 명의 흑인이 희생되었다. 이러한 인종차별 정책에 대하여 영국 정부가 비판하자 영국연방을 탈퇴하고, 1961년 5월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선언하였다.


< 자연환경 >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아프리카 대륙의 최남단에 있으며 동쪽으로 인도양, 서쪽으로 대서양을 낀 동고서저 지형을 가진 천혜의 자원 부국이다. 국토의 대부분이 해발고도 900∼1,200m의 고원이다. 인도양 연안의 좁은 해안평야와 내륙고원 사이에는 드라켄즈버그산맥이 북동쪽에서 남서쪽 방향으로 뻗어 있다. 최고봉은 타바나앤틀렌야나산(3,482m)이며, 산맥의 동쪽 사면은 가파른 절벽이 해안 가까이까지 이어져 있다. 전국토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내륙고원은 서쪽의 그레이트카루고원과 북동쪽의 노스카루지역 및 하이벨트로 구성된다. 북서쪽은 칼라하리사막의 남단부에 접하며, 서해안을 따라 남서아프리카까지 나미브사막이 이어져 있다. 최남단에는 케이프산맥이 케이프타운까지 연속된다. 이 나라의 해안선은 몇 개의 만과 곶을 제외하면 대체로 단조로우며, 좋은 항구가 드물다.

자연적인 호수가 몇몇 있으나 내륙수로는 발달이 미약하다. 하천으로는 국토의 중앙부를 횡단하여 대서양으로 유입하는 오렌지강(2,092km)이 가장 길고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그밖에 림포포강·발강 등이 있다. 지형은 고원을 이루고 있어 기후는 생활하기에 적당한 아열대성 기후이며, 동부지역이 서부보다 온난다습하다. 1년은 크게 여름(11~3월)과 겨울(6~9월)로 나누어지며, 여름과 겨울 사이에 봄, 가을이 짧게 지속된다. 연평균기온은 인도양 연안의 포트엘리자베스가 18℃, 대서양 연안의 케이프타운이 15.9℃, 내륙고원의 요하네스버그가 16℃이다. 내륙고원은 해안으로부터 떨어져 있어 건조하고 일교차가 큰 편이며, 겨울에는 서리일수가 150일이나 된다.

연안해류는 기후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데, 벵겔라한류는 대서양 연안, 모잠비크난류는 인도양 연안의 기후에 영향을 준다. 여름은 우기로 비가 많이 내리며, 겨울은 건기로서 강우량이 극히 적다. 동해안지역은 1,200mm에 달하나 서해안은 적으며, 내륙지역에서는 500mm 이하이다. 국토의 절반 가량이 연평균강수량 380mm 이하이므로 한발이 농업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 대륙의 남서단 지역은 겨울철에 비가 많은 지중해성 기후이다.

식생은 습윤한 동부 고원에서는 기름진 목초지와 이 지방 특유의 관목, 삼림지가 펼쳐져 있으나, 서쪽으로 가면서 강수량의 감소로 목초가 짧아지며 건조한 카루지역에서는 반건조 관목 식생으로 변한다. 남서 케이프지역에서는 지중해성 기후의 식생이 자란다. 강수량이 많은 동해안 지역에서는 자연림이 계곡을 따라 분포하고, 아열대림에 속하는 마호가니, 흑단 등도 자란다. 북쪽의 트란스발지방은 사바나 식생이 나타나고 야생동물도 많았으나, 지나친 사냥으로 지금은 이들을 보호하고 있다. 트란스발의 크루거국립공원에는 사자·코끼리·영양 ·하마·코뿔소·기린·표범 등 외에 희귀한 흰코뿔소와 영양의 일종인 겜스복(gemsbok)도 보호를 받고 있다.


< 문화 >

남아프리카공화국은 다종교사회이고 피부색에 의해 여러 집단으로 나누어져 있다. 아프리카인(人)과 영국인 모두 어느 한쪽으로 섞이는 것을 원하지 않아 전통의 흑인문화는 크고 작은 여러 집단으로 형성되어 있다. 전통 흑인문화는 도시가 아닌 지역에 여전히 많이 남아 있으며, 남성의 힘과 정신을 하나의 신으로 여기고 일부다처의 문화가 허용된다. 또한 부와 제물의 동물인 양을 키우는 것도 문화의 한 형태이다.

산업·경제·문화의 중심지인 요하네스버그나 프레토리아에는 다양한 건축양식이 현대적인 거리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여러 박물관에는 고대유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식민지 통치를 했던 백인들의 문화도 곳곳에서 엿볼 수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공용어가 영어·아프리칸스어(語)를 합쳐 11개나 된다는 것은 이 나라의 문화적 다양성을 잘 말해준다. N.P.반 위크 로·브레이튼 브레이튼바흐는 아프리칸스어권 작가, 앨런 페이턴·네이딘 고디머·에이솔 푸가드 등은 영어권 작가로 유명하다.

 

 

< 한국과의 관계 >

남아프리카공화국은 6·25전쟁 때 UN군(United Nations Forces:국제연합군)으로서 참전하였으며, 친(親)서방과 반공(反共)을 대외정책의 기조로 하여, UN 총회에서는 한국에 관한 서방측 안을 적극 지지하였다. 그러나 인종차별정책에 따른 세계적 여론 때문에 미수교 상태에 있다가 1992년 12월 외교관계를 수립했으며, 북한과는 1998년 8월에 수교하여 1999년 6월 공관을 개설하였다.

1995년 7월에는 대통령 넬슨 만델라가 방한하여 대통령 김영삼과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 기업의 상호진출 및 교역확대를 위해 함께 노력하기로 합의하였고, 1998년 4월에 부통령 음베키(1999년 대통령 취임)가 방한하였다. 1999년 국무총리 김종필, 2001년 여성부장관 한명숙이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방문하였고 2001년 3월 전대통령 넬슨 만델라가 방한하였다. 1995년 이중과세방지협정·항공협정·투자보장협정을 체결하였다. 2000년 대(對)한국 수출은 9억 4020만 달러이며 수입은 4억 9490만 달러이다. 주요 수출품은 광물, 귀금속, 사탕수수 등이며 수입품은 차량, 섬유직물, 전기·통신기기, 타이어, 기계류 등이다. 2001년 6월 현재 한국인 교민 480명, 체류자는 920명이다.

 

 

 

 

< 사회 >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사회적·문화적 특색은 인종격리 정책에 있었으나, 1989년 9월 총선에서 드클레르크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 인종차별정책이 크게 완화되기 시작하여 1991년에는 인종차별정책을 종식시켰다. 이로써 흑인을 차별하던 학교, 버스, 식당, 극장들이 없어졌으며, 백인학교에도 흑인이 다닐 수 있고 주거지의 차별도 사라졌다. 백인은 주로 그리스도교를 믿으며 비백인도 그리스도교로 개종하는 추세이다.

의학기술, 의료보험제도, 병원시설은 모두 선진수준이다. 병원은 지방정부운영 병원과 사설병원으로 크게 구분되며 의료수준의 차이가 매우 크고 국가에서 운영하는 의료보험제도가 없어 대부분 사적의료보험에 가입한다. 국가에서 운영하는 복지제도는 극히 미비하며 개별회사별로 운영된다.

언론에는 정부가 거의 관여하지 않으며 영자신문, 아프리칸스어 신문, 흑인언어 신문 등 36개 신문이 발행되고 있다. TV 채널은 5개이며 각 방송은 시간대별로 영어, 아프리칸스어, 흑인 토착어로 방영한다. TV는 도시와 백인지역 위주, 라디오는 대다수 흑인지역 위주로 방송된다.

법률상 10년간 의무교육을 시행하도록 규정되어 있으나 예산문제로 완전한 의무교육을 시행하지 못하고 있다. 백인지역과 흑인지역 간 교육 격차는 아직도 심하며, 국가재건계획(RDP) 중 교육사업이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학제는 초등학교 7년, 중·고등학교 5년으로 되어 있으며, 대학은 3년제 정규대학과 직업기술에 중점을 둔 2~3년제 전문대학으로 구분된다. 2000년 인구증가율은 0.5%, 출생률은 1,000명당 24.56명, 사망률은 14.69명, 영아사망률은 58.88명이다. 평균수명은 51.1세로 남자는 50.41세, 여자는 51.81세이다. 15세 이상 문맹률은 18.2%이다(1995).


 < 경제 >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농목업 생산은 국내총생산의 5% 정도로, 농업은 시장용 생산 위주의 백인농업과 자급자족용의 아프리카인(人)농업으로 나뉜다. 주요 농작물로는 트란스발지방과 오렌지 자유주에서 주로 생산하는 옥수수와 밀, 나탈주(州)의 사탕수수·잎담배·감자가 있고, 과수로는 트란스발과 나탈의 감귤류, 케이프주의 포도 재배를 들 수 있다. 백인계와 반투족(族) 농민들에 의한 낙농업도 중요하나, 기후와 토양의 조건이 불량하여 목초가 빈약하다. 양모는 건조한 서부지역에서 주로 산출되며 중요한 수출품이 되고 있다. 1966년 시작된 오렌지강(江) 개발사업으로 한발문제는 다소 해결이 되고 있다.

남아프리카의 중요산업으로는 광업을 들 수 있는데, 풍부한 광물지하자원은 이 나라 경제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약 1,000개의 광산에서 60여 종의 광물을 채광하고 있으며, 세계 최대의 광물자원부국으로 광물수출이 전체 수출의 45%(1997)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광업은 점차 발전이 둔화되어 1998년에는 국내총생산의 7%를 차지하는데 그쳤다. 다이아몬드는 세계 생산액의 66%를 차지하며, 주산지는 야거스폰테인(오렌지 자유주), 킴벌리(케이프주), 프리토리아 부근이다. 세계 매장량의 절반을 차지하는 금은 주로 남부 트란스발과 오렌지 자유주에서 생산되며, 우라늄은 금광석과 함께 채광된다. 석탄은 트란스발과 나탈주가 주산지이다. 그밖의 광물로는 철광·구리·니켈·크롬·인광 등이 생산된다.

제조업은 이 나라의 최고 주요산업으로 국내총생산의 20%를 차지하는데, 식품 가공공업, 제철, 화학공업, 섬유공업, 자동차, 금속, 기계, 화학, 석탄액화, 발전, 비료가 주요 품목이다. 4대 공업지역은 남부 트란스발과 서부 케이프주·나탈·포트엘리자베스를 들 수 있다. 공업은 지나치게 도시집중화되어 있어서 남아프리카공화국 정부는 공업의 지방분산을 꾀하고 있다.

산업은 백인자본과 아프리카인의 저임금 노동력으로 유지되었는데, 인종차별법 폐지와 함께 세계 각국의 경제제재가 풀리면서 만델라의 대통령 취임 후 경제는 수년 동안의 0%대의 성장률에서 1994년 2.3%, 1996년에는 4.2%까지 올랐다. 국내 투자도 폭발적으로 증가하였고 요하네스버그와 프리토리아 사이의 도로변에는 기업들의 사무실이 빽빽이 들어섰으며, 외국자본의 유입도 늘어났다. 1996년부터 '성장, 고용과 재분배'라는 경제정책으로 시장개방, 사유화, 투자유치를 추진하여 경제재건에 노력하였으며 노동집약적인 산업분야에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세제혜택을 도입하였다. 그러나 1998년에는 내수 축소, 세계경기 침체로 인하여 경제성장률이 0.5% 떨어졌다가 1999년에는 1.2%로 어느 정도 회복되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무역상대국은 미국, 영국, 일본, 독일 등과 남아프리카의 관세 동맹국들이다. 주요 수출품으로는 금이 전체의 12.8%(2000)을 차지하고, 기타 가정용품, 비금속제품, 광물제품, 화학제품, 식품, 섬유제품, 다이아몬드 등이 있으며, 근래 공업제품의 비중이 증가하고 있다. 수입품은 기계, 자동차류, 화학제품, 과학기기, 섬유제품, 플라스틱, 고무 등이다. 2000년 수출은 2113억 1900만 랜드, 수입은 1880억 7600만 랜드로 232억 4300만 랜드의 무역흑자를 나타내었다. 1998년 국내총생산 가운데 금융은 18%, 상업은 14%를 차지한다.

철도는 요하네스버그를 중심으로 프리토리아·케이프타운·더반 등의 도시로 연결되어 있다. 총길이는 약 2만 2,000km로, 그중 약 20%가 전화(電化) 구간이다. 국내 항공망과 도로망(총길이 53만 4131km)도 다른 아프리카 여러 국가들에 비하여 현저히 발달하였다. 1999년 현재 공항은 744개가 있다.

< 정치 >

남아프리카공화국은 다당제에 입각한 의원내각제가 가미된 대통령 중심제의 공화국으로, 국가원수이자 행정수반인 대통령은 하원에서 선출된다. 의회는 백인의원만으로 구성된 상·하 양원제였다가 1981년 상원이 폐지되었으며 이후 다시 양원제로 바뀌었는데, 현재 하원 400명, 상원 90명으로 이루어진다.

정당은 이전에는 인종별로 백인정당으로서 NP(국민당)가 집권당이었고 아프리카인의 정당은 불법적인 것이 많았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ANC(아프리카민족회의)이다. 1961년 제정된 70여 인종차별법규를 중심으로 아파르트헤이트정책을 실시했으나 그후 서서히 개혁이 이루어졌다. 1981년 헌법개정으로 대통령이 지명하는 사람으로 구성되는 대통령평의회가 설치되었다. 이 평의회에는 소수였으나 혼혈인·인도인을 포함시켜 부분적으로 이들의 정치참여를 부활시켰다. 헌법 개정안은 국민투표로 가결되었고 새 대통령에 총리 P.W.모타가 선출되었다.

그러나 본격적인 개혁은 1989년 총선으로 집권한 대통령 드클레르크에 의해 추진되었다. 그 결과 1990년 2월 ANC의 의장 넬슨 만델라가 석방되고 흑백분리법이 폐지되었으며, 1991년 인종차별정책의 근간법인 인구등록법의 폐지가 의회를 통과했고, 신헌법제정이 추진되었다. 이 과정에서 한때 평화협상이 좌초되기도 했지만, 1994년 4월 27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최초의 다인종 자유선거가 실시되어 넬슨 만델라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1996년 의회에서 인종차별 철폐를 비롯한 인권보장 측면이 강조된 신헌법을 채택하여 1997년 2월부터 부분적으로 발효되기 시작하였고 1999년 6월 완전 발효되었다. 1999년 6월 2일 총선에서 ANC가 승리하였으며, 6월 14일 대통령 선거에서 음베키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외교적 경향은 통치계급의 성격상 친서방적이었다. 그러나 인종차별정책에 대한 국제적 비난이 강화되고 1974년 UN(United Nations:국제연합)에서 축출되자 국제사회에서 고립되었다. 1986년 미국 의회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경제제재결의안을 통과시켰고 1988년 UN 총회에서도 제재를 결의하자 국제적 고립은 최고조에 달했다. 그러나 1994년 5월 신정권 탄생 후 OAU(Organization of African Unity:아프리카통일기구), 비동맹제국회의, SADCC(Southern African Development Coordination Conference:남아프리카개발협력회의)에 가맹하고 영국연방에도 재가맹하였으며, UN 총회의 의석을 20년 만에 회복하였다. 미국·EC(European Community:유럽공동체) 등도 경제제재를 해제하였다. 병역은 지원제이며 총병력은 상비군 7만 5479명, 예비군 60만 5185명이다.

 

< 주민구성 >

남아프리카의 주민 구성은 특수하여 백인과 비(非)백인으로 대별된다. 백인은 10%를 차지하며 네덜란드계, 영국계, 프랑스계, 독일계 등이 있고, 비백인은 반투족(아프리카 흑인), 아시아인(인도인·파키스탄인), 컬러드(colored:각종 혼혈인, 호텐토트, 부시먼, 말라야인, 인도네시아인 등)로 나뉜다. 이곳에 최초로 정착한 사람들은 보어인(人)으로 알려진 네덜란드인으로서 그들의 후손이 현재 아프리카인이며, 영어 외에 네덜란드어에서 파생된 아프리칸스어(語)를 사용하고 있다. 반투족은 부족에 따라 호사(Xhosa), 줄루(Zulu), 츠와나(Tswana), 바페디(Bapedi), 소토(Sotho) 등으로 분리되어 있다.

컬러드는 아프리카인과 초기의 백인 이민의 혼혈족·호텐토트족 등의 후손들인데 주로 케이프주(州)에 거주한다. 아시아계는 19세기에 사탕수수 재식농업 노동자로 이주해온 사람들이며, 주로 나탈주(州)에 거주한다. 종교는 신교도(66%), 가톨릭교도(9%)가 대부분이고 유대교, 이슬람교, 힌두교, 토착신앙을 믿는 주민도 있다. 언어는 영어와 아프리칸스어 외에 9개 흑인 부족어를 공용어로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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