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 노벨상은 단편적인 발명이 아니라 체계성이 있는 연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체계성이 있으면 인류적인 기여도 가능)
<교류와 직류의 전쟁으로 노벨상을 받지 못한 발명왕 에디슨>
에디슨 효과는 열에 의해 에너지를 얻은 전자가 원자의 구속에서 벗어나 고체 표면에서 튀어 나오는 현상이다. 이 효과는 전자가 발견되기 전인 1884년 에디슨이 발견했으며, 후에 영국의 물리학자 리처드슨이 체계적으로 연구하였다.
에디슨 효과의 발견은 열전자 방출이라고 하여 그 후 X선과 전자를 발견하거나 선스펙트럼 연구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 공로로 리처드슨은 1928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에디슨>
에디슨은 송전선, 소켓, 퓨즈, 전구 등의 부품을 개발하여 전기 공급시장에 뛰어들었다. 에디슨은 송배전에 110V의 직류를 사용했는데, 이 방식은 전압이 너무 낮고, 전선 저항에 의한 전력 손실이 커서 발전소에서 3~5km 정도밖에 송전할 수 없었다.
당시 고압선에 의하여 매년 수십명의 사람과 말이 감전사를 당하고 있었는데, 교류가 원래 위험하기 때문에 감전사가 일어난다고 주장했다. 뿐만 아니라 그 당시 사형 집행기를교류를 이용한 전기 의자로 바꾸려는 시도가 실패로 끝나면서 테슬라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심어주었다.
<테슬라>
그 때, 에디슨의 조수로 일하던 테슬라가 교류 유도 전동기와 교류 송전에 적합한 변압기를 발명하고, 이를 추진하려고 하였으나 에디슨이 자신이 발명한 전구의 수요를 늘리기 위하여 직류를 고집하자, 곧 결별하고 말았다. 웨스팅하우스사는 즉시 테슬라의 기술 특허를 구입해 장거리에 알맞은 교류 송전 방식을 추진하였다.
테슬라의 변압기에 의하여 에디슨이 주도하는 송전 사업이 위협을 받게 되자 그는 교류 송전 방식은 위험하다고 적극적인 역선전 공세를 펼쳤다.
그런데 1912년 노벨상위원회에서 전기 보급으로 인류에게 획기적으로 기여한 두 사람에게 노벨상을 수상할 예정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그러자 테슬라는 에디슨과 함께라면 노벨상을 거부하겠다고 선언하였다.
결국 1912년의 노벨상은 등대에서 사용하는 조명 등을 개발한 또 다른 발명가 달렌에게돌아갔다. 1928년 에디슨 효과로 다시 한번 노벨상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이런 과거 때문에 에디슨은 수상자 명단에서 다시 제외되고 리처드슨에게 돌아가는 불운을 맛보았다.
출처 : 엠파스 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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