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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역사/유적/해외 관련

몽골제국의 유럽원정 위엄

1240년 겨울, 얼어붙은 비스툴라 강을 건너 바이다르와 카이두가 이끄는 몽골군의 일부가 폴란드 공격에 나섰다. 츠미엘니크(Chmielnik)에서 폴란드의 주력을 격파하고 크라코우(Cracow)까지 진격하자 폴란드의 볼레슬라브 4세(Boleslav IV)는 모라비아로 달아난다. 이어 바이다르는 라티보르(Ratibor)까지 진격하는데 이곳에서 실레지아 공 헨리(Henry)가 이끄는 폴란드군, 독일 십자군, 튜튼기사단으로 구성된 3만의 병력과 격돌하였다. 폴란드군과 독일 십자군은 전력상의 열세로 패주했고, 튜튼기사단은 전멸했다. 몽골군은 잔여병력을 추적하여 전멸시켰으며 헨리공도 왈슈타트에서 몽골군에 의해 살해되었다. 기세를 몰아 바이다르와 카이두는 모라비아마저 초토화 시켰고, 이후 신성 로마제국과 러시아를 위협하던 야겔로 왕조의 폴란드는 완전히 몰락한다. 

바투가 이끄는 몽골 본대는 수베에테이의 지시아래 헝가리로 진격한다. 샤이반, 바투, 카디안이 지휘하는 3개의 분대로 나뉘어진 몽골군은 각각의 진로상에 있는 모든 영지를 약탈하고 파괴하며 페스트(Pest)에 집결한다. 헝가리 국왕 벨라 4세(Bela IV)는 서둘러 헝가리군을 집결시켰고, 모히(Mohi)남쪽에서 격돌하였으나 몽골군에 의해 격파당하였고, 헝가리군은 와해되어 버렸다. 다뉴브까지 진격한 몽골군은 헝가리 전 국토를 초토화 시켰으며 끝까지 저항한 몇개의 성채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에서 집단 처형과 주민학살이 이어졌다.


사요(Sajo)에서 벌어진 헝가리군과 몽골군간의 전투. 이 전투로 헝가리군의 주력 대부분이 와해된다.


이후 도망친 벨라 왕을 추적하기위해 오스트리아 근방까지 압박하던 몽골군은 1241년 대칸 우구데이의 사망으로 철수하게 된다. 대칸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앗틸라 이래 서방이 직면했던 최대의 위기를 구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의심할 여지조차 없다. 철수를 시작한 몽골군은 사로잡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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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이고 이때까지도 유럽인들은 이렇게 생각했데 동쪽에서 왠 기마부대가 나타나서 마을 휩쓸고 홀연히 사라졌다고
그래서 자신들이 진건지도 이긴건지도 몰랐다고 함..
나중에 몽골 칸의 사망으로 몽골군이 회군할때도 유럽인들은 저들은 왜 갑자기 나타났다가 사라진지 조차도 몰랐다고 함
그당시 교황청은 저들을 신이 내린 벌이라고 생각하였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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